넷플릭스에서《들쥐》라는 시리즈를 방영한다는 홍보 광고를 보고 스트리밍되기까지 꽤 기다렸습니다. 제목을 보니 어렸을 적 읽었던 "손톱 먹은 들쥐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혹시 그 설화를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인가?하는 궁금증에 공개되자마자 정주행을 하게 됐습니다.어릴 적 동화가 현대 스릴러로 — 설화 모티브와 정체성 공포제가 어릴 때 읽었던 이야기 중에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으면 그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그 이야기가 무서워서 손발톱을 깍으면 꼭 모아서 휴지통에 버리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들쥐》 1화를 보다보니 바로 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드라마의 설정 자체가 이 설화, 즉 '내 손톱을 먹은 들쥐가 나..
사람과 가까워지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소수일까요. 저는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 그 감정이 제 성격 탓인 줄만 알았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얼음 성벽》은 학교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청춘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제가 봤을 때는 사람 사이의 거리와 마음의 벽을 다루는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잔잔하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마음의 벽 — 코유키가 낯선 사람이 아닌 이유《얼음 성벽》의 주인공 히카와 코유키는 흔히 말하는 '회피형 애착(avoidant attachment)' 성향을 가진 인물로 읽힙니다. 회피형 애착이란 타인과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심리적 패턴을 의미합니다. 코유키가 차갑게 보이는 건 그래서입니다. 실제로 싫어서가 아니라..
이상한 드라마가 왜 이렇게 오래 생각날까요.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음 틀었을 때 저는 1화를 보다가 진짜로 멈칫했습니다. 보건실 선생님이 장난감 칼을 들고 알록달록한 젤리를 베는 장면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6부작을 다 보고 난 뒤에는 젤리가 아니라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이 드라마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직접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엄마의 눈으로 보니 젤리가 보였다《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주인공 안은영이 가진 특별한 능력은 '투시력(clairvoyance)'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투시력이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지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이것이 '젤리'라는 형태로 시각화됩니다. 젤리는 사람의 욕망이나 억눌린 감정이 응어리진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
사기꾼은 어떻게 사람을 속일까요? 일반적으로 치밀한 계획과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애나는 특별한 기술 대신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을 정확히 보여줬을 뿐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뉴욕 상류층 전체를 움직였습니다.이미지 심리 — 사람들은 왜 보이는 것만 믿었을까《애나 만들기》는 실제 인물 안나 소로킨, 즉 '안나 델비'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입니다. 그녀는 독일의 부유한 상속녀 행세를 하며 뉴욕 상류층에 침투했고, 은행과 호텔, 지인들에게 수십만 달러를 빌리거나 결제를 미뤄가며 화려한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것은 기자 제시카 프레슬러의 뉴욕 매거진 기사였고(출처: New Yo..
넷플릭스 《무브 투 헤븐》을 보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드라마를 끄고 나서 아이 방을 한참 들여다 본 것 입니다. 안 입는 옷, 낡은 장난감,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작품들. 평소엔 '언제 정리하지' 하고 지나쳤던 것들인데, 그날따라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드라마인데 오히려 지금 살아가는 시간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게, 보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유품정리라는 직업이 보여주는 것처음에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유품정리사(遺品整理士)라는 직업이 낯설어서였습니다. 여기서 유품정리사란,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공간과 물건을 정리·처분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을 말합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자격증 제도까지 갖춰진 분야입니다. 드라마에..
스포티파이는 현재 전 세계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6억 명을 넘는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입니다. 저는 이 숫자를 보고도 '그냥 크다'는 정도로 넘겼었는데, 넷플릭스 《플레이리스트》를 보고 나서야 그 뒤에 얼마나 복잡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스포티파이가 해결하려 했던 문제《플레이리스트》의 배경은 2000년대 초반 음악 산업의 위기입니다. 당시 P2P(Peer-to-Peer) 파일 공유 방식으로 음원을 무료로 주고받는 일이 일상화됐습니다. 여기서 P2P란 서버를 거치지 않고 이용자끼리 직접 파일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냅스터(Napster)가 대표적인 서비스였습니다. 음반사들은 수익이 급감했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도 타격을 받았습니다.주인공 다니엘 에크는 이 상황에서 다른 접근을 ..